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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온수리성당 안녕하세요. 오늘은 기독교 지식을 1가지 질문드리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기독교 지식을 1가지 질문드리려고 합니다         [대한성공회 온수리성당]을요.       대한성공회 온수리성당은 어떠한 성당인가요?     소재지가 경기도 강화군 길상면이고, 전통적 한옥 양식으로 만들어진 성공회 성당이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답변해주실 분께서 보시고 답변해주시기 바랍니다. 
질문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재림 안식교 이단이 와서 답변하면 재림 안식교의 답변을 채택하는 것은 재림 안식교 이단의 활동을 적극 돕는 것이 되니 이점 주의해 주시기 부탁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자료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강화 온수리 성공회성당[ 江華 溫水里 聖公會聖堂 ]
정의
대한제국기에 건립된 한식목구조 건물로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위치하는 성공회 성당건물.
개설
강화군 온수리 성공회 성당의 본채인 예배당 건물과 2층 종탑은 2003년 10월 27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역사적 변천
대한제국 시기인 1906년(고종 43) 영국인 주교 조마가(Mark N. Trollope)가 지은 성당으로 우리나라에 전래된 초기 서양 기독교의 교회양식을 볼 수 있는 목조건물이다.
내용
현재 남아있는 성당은 2고주(高柱) 5량가(梁架)의 목조의 예배당과 2층 종탑 2동이다. 예배당의 지붕은 합각이며 정면9칸 측면3칸이다. 종탑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중앙의 2층에 종루가 있다. 원래 본채 건물의 외벽은 목조기둥이었다고 하나 현재는 조적조로 변형되어 있는데, 서도의 중앙교회 건물 구조 및 양식과 매우 흡사하다. 지붕은 전통기와로 덮었으며, 처마는 홑처마로서 팔작지붕이다. 지붕 용마루 끝망과 뒤쪽에 십자가를 세웠고 합각 중앙에는 십자가 모양으로 붉은 벽돌을 쌓았다.
성당 정면은 건물의 서면으로 출입구이고, 중앙 칸에는 두 짝의 양식 판문(板門)의 문비(門扉)를 달았다. 양측 칸은 중앙에 유리창문을 설치했고 중방 밑은 벽돌을 쌓아 벽체로 하였다. 기둥 위 창방과 납도리 사이에는 접시받침을 배치하여 건물의 격을 높였다. 건물의 동면은 중앙 칸에 양식 판문 한 짝을 설치하여 본당 뒷문으로 삼았고, 양측 칸은 중방 위에 작은 유리창을 달았다. 건물의 남면은 양단 한 칸만 기둥위 창방과 납도리 사이에 접시받침을 설치하였다.
본당 내부는 중앙에 두 줄의 고주(高柱)를 세우고 비교적 가는 부재(部材)로 된 보를 걸었으며, 고주 머리에서 보 밑을 초공으로 받쳤다. 보 위 중앙에는 판대공(板臺工)으로 마루도리를 받쳤으며, 마루도리 밑에는 직접 장혀[長舌]을 붙이지 않고 접시받침을 배치하고 접시받침 밑에 장혀형 장재(長材)를 걸었다.
본당의 중방 밑 벽돌벽은 20년 전에 기둥하부 부식이 심하여 절단하고 중방 밑 전체를 벽돌벽으로 보수한 것이다. 원래는 입방체 화강석 기초 위에 세워진 2조 호형(弧形)으로 귀깍음한 각주(角柱)의 벽체는 전통기법의 회벽처리로 마감하였다. 현재 화강암 초석은 부근에 보존되고 있다.
종루 건물은 원래 모두 전통 목재건축기법으로 축조한 것으로 현존 건물과 같은 모습의 건물이었으나, 본당 보수시 부식이 심했던 기둥과 벽체를 모두 해체하고 시멘트 블록으로 축조하고, 지붕만 목조건축으로 꾸민 것이다.
의의와 평가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기법을 활용하여 종교적인 성당건축 방법과 공간 구성을 확립한 동서 절충식 강당형의 목조건물로, 초기 성공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종교사 및 건축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강화도』(이영미, 김영사, 2004)
『인천광역시사』(인천광역시, 2002)
[네이버 지식백과] 강화 온수리 성공회성당 [江華 溫水里 聖公會聖堂]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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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온수리 성공회 성당 중 본당 후면 image
강화 온수리 성공회 성당 중 본당 정측면 image
강화 온수리 성공회 성당 중 본당 후측면 image
강화 온수리 성공회 성당 중 본당 좌측면 image
강화 온수리 성공회 성당 중 본당 좌측면 image
강화 온수리 성공회 성당 중 문루 정면
사진은 너무 많아서 일부만 가져옵니다.
참고; 강화성당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大韓聖公會 江華聖堂 ]
정의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대한제국기에 건립된 한옥 형태의 대한성공회 성당. 성공회성당.
내용
1981년 7월 15일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 1월 4일 사적으로 번경되었다. 대한성공회의 초대 주교인 코프(Corfe, C. J.)에 의하여 1900년(광무 4)에 건립되었다.
대한성공회의 역사는 1889년 코프가 초대 한국 주교로 영국에서 서품을 받음으로써 시작되는데,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한 사람의 신자도 없었고, 한국인에게 처음 세례를 베푼 것은 주교 축성이 있은 지 7년 뒤인 1896년 6월 13일 강화에서였다.
대한성공회에서는 이러한 인연으로 강화에 제일 먼저 성당을 건립한 것인데, 대한성공회에서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니게 되었고, 현존하는 한옥 교회건물로서도 가장 오래된 것이다. ​서유럽의 바실리카(Basilica)양식과 동양의 불교사찰양식을 과감하게 조합시켜 건립하였다.
교회의 내부공간은 바실리카양식을 따랐고, 외관 및 외부공간은 불교사찰의 형태를 따랐다. 목재는 압록강에서 운반하여 사용하였으며, 경복궁 공사에 참여했던 대궐 목수가 건축을 맡았다.
경사지의 대지를 축성하여 입구 계단, 외삼문ㆍ내삼문ㆍ성당ㆍ사제관을 동남향 종축으로 배치한 외부공간의 구성이 불교사찰의 구릉지가람(丘陵地伽藍)과 비슷하며, 성당 앞마당에는 큰 보리수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외삼문 솟을대문은 팔작지붕으로 담장과 연결되어 있으며, 동쪽 칸에는 초대 사제(司祭)의 묘비가 서 있다. 내삼문은 평대문에 역시 팔작지붕이고, 서쪽 칸은 종각으로 쓰이고 있으며, 성당은 정면 4칸, 측면 10칸의 바실리카식 평면구성이다.
성당 내외부에는 서양식 장식이 거의 없는 순수한 한식 목조건축이면서도 교회기능에 충실한 내부공간을 연출함으로써, 초기 성공회 선교사들의 토착화 의지가 나타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기독교 역사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성당건물이다.
참고문헌
『한국성공회사개관(韓國聖公會史槪觀)』(대한성공회출판부, 1980)
「초기(初期) 한국성당건축(韓國聖堂建築)의 토착화(土着化)에 관한 연구(硏究)」(김정신, 『건축사』173, 1983)
[네이버 지식백과]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大韓聖公會 江華聖堂]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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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중 외삼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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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중 외삼문 정면과 현판 image
강화 성공회 강화성당 천주성전 정측면 image
강화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중 내삼문과 동종 image
강화성당 근접 정면 image
너무 많아서 사진을 일부만 가져옵니다.